테슬라에도 ‘S대 라인’ 있다… 공대 99학번이 ‘넘버3’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입력 2023-03-18 07:00   수정 2023-04-15 00:04



“캘리포니아 글로벌 엔지니어링 본부는 테슬라의 제2 본사입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테슬라는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 새 본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날 본사 예정지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아들 엑스(X Æ A-12)를 안고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와 대화하는 사진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국경제 [테슬람 X랩]은 지난 2월 5일 자에 테슬라가 스탠퍼드대학 인근에 대규모 사무실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건물은 2019년까진 HPE(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 본사가 있던 곳으로 스탠퍼드대 정문에서 차로 4분 거리입니다. 테슬라 엔지니어링 본부는 자율주행과 로봇 등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외신들은 ‘코로나 봉쇄령을 피해 텍사스로 떠났던 머스크가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요람’ 스탠퍼드
[테슬람이 간다]에서 주목하는 것은 정부 규제 등의 정치적 이슈가 아닙니다. 테슬라 새 본사 소식을 처음 전한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테슬라가 이 장소를 택한 이유는 소프트웨어·AI 등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테슬라의 이전 팔로알토 본사는 시내에서 떨어진 산간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스탠퍼드가 있습니다.

스탠퍼드는 실리콘밸리 북서쪽에 자리 잡은 사립 연구중심 종합대학교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대학 평가기관인 US뉴스에 따르면 스탠퍼드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이어 전 세계 3위(2022~2023년)로 ‘초일류 명문대’입니다.

무엇보다 이 학교는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의 요람과도 같은 곳입니다. 스탠퍼드 출신 청년들이 HP, 구글, 야후,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나이키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을 창업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수재들이 이러한 성공 스토리에 매력을 느끼고 스탠퍼드에 몰립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열을 올립니다.


‘스탠퍼드 라인’ 맏형, 스트라우벨
테슬라 역시 비슷합니다. 이 회사는 2003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창업자와 초기 인력들이 스탠퍼드 출신이 많았습니다. 우선 머스크가 1995년 스탠퍼드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으려다 이틀 만에 창업에 뛰어든 케이스입니다. 연이은 사업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된 그는 스쳐 간 모교(?)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머스크의 나이 32세였습니다.

2003년 이 강연을 들었던 한 스탠퍼드 학생이 훗날 ‘테슬라 2인자’가 됩니다. 바로 공동 창업자이자 15년간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던 JB 스트라우벨입니다. 1975년생인 그는 낡은 포르쉐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등 실력과 열정으로 가득 찬 공학도였습니다. 교내 태양광자동차 연구팀의 맏형이기도 했습니다. 2004년 머스크의 제안을 받고 함께 테슬라에 합류합니다.



스트라우벨이 맡은 업무는 테슬라의 첫 모델인 로드스터의 파워트레인과 배터리팩 개발이었습니다. 그는 스탠퍼드 친구와 후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속속 ‘맏형’의 팀에 합류합니다. 어느새 그의 집 차고는 테슬라의 또 다른 연구소가 됐고 거실은 사무실처럼 쓰였습니다. 2008년에 이르러 스탠퍼드 출신 직원은 40명에 달하게 됩니다. 훗날 스트라우벨은 “로드스터의 핵심 기술은 거의 다 스탠퍼드 출신들이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찰스 모리스 『테슬라모터스』).

사실상 ‘스탠퍼드 라인’이 형성된 셈입니다. 테슬라 사내에선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공동 창업자였던 이언 라이트는 한참 어린 스트라우벨에게 혹시 자신의 자리를 노리냐고 대놓고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라이트는 결국 1년 만에 회사를 떠났고 배터리 관련 엔지니어링은 스타라우벨이 총괄하게 됩니다.


바통 이어받은 ‘적통’ 바글리노
2019년 7월 스트라우벨은 테슬라를 떠납니다. 그는 네바다 기가팩토리 건립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머스크와 사이도 소원해졌습니다. 결별의 낌새를 챈 머스크가 조금만 기다려달라 했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스탠퍼드 출신이자 그의 최측근에게 배터리 감독권을 물려줍니다. 바로 현 테슬라 CTO이자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인 드루 바글리노(Drew Baglino)입니다. 그는 스탠퍼드에 1999년 입학했고 전기공학과를 나왔습니다. ‘선배’ 스트라우벨의 영입으로 2006년 테슬라에 들어와 배터리와 파워트레인 분야 엔지니어로 일합니다. 전기차의 핵심 배터리 분야에서 ‘스탠퍼드 라인’이 요직을 독차지한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바글리노가 잭 커크혼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이어 사내 서열 3위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글리노가 머스크에게 받은 임무는 ‘배터리 자체 개발’입니다. 테슬라는 초창기부터 배터리 업체에 무시당하는 등 많은 설움을 겪었습니다. ‘슈퍼 을’ 2차전지 기업들은 이름도 모르는 전기차 스타트업에 화재 위험성 등을 이유로 물량을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들은 테슬라가 유명해진 뒤에도 배터리 대량 공급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파나소닉과 합작 배터리 공장인 네바다 기가팩토리 역시 설득에 큰 애를 먹었습니다.

이 때문에 머스크는 배터리 업체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합니다. 또한 배터리 비용이 너무 높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현재 테슬라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파나소닉, LG화학, CATL 등에 100% 의존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내재화’의 야심
2019년 바글리노는 ‘로드러너’라는 이름의 배터리셀 자체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듬해 9월 배터리 데이 무대에 오른 그는 배터리 원가 절감 방안을 공개합니다. 원통형 배터리 셀 크기를 지름 46㎜·높이 80㎜로 키운 ‘4680 배터리’입니다. 그는 기존 2170 배터리에 비해 전기차 주행거리를 최대 16% 늘릴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테슬라는 작년 말 4680 배터리가 양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프리몬트 인근 카토로드 파일럿 공장에서 주당 86만8000개 생산에 이르렀고 이는 테슬라 전기차 1000대에 사용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향후 생산성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입니다. 테슬라는 기가네바다에서도 4680 배터리 생산을 위한 증설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배터리 기업에 의존하는 테슬라의 현실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4680 배터리 역시 LG화학, 파나소닉 등이 개발 중입니다.

테슬라의 배터리 야심은 결국 바글리노의 어깨에 달렸습니다. 머스크가 공언한 2030년 전기차 2000만대 생산도 배터리 수급 없이는 요원합니다. 일부 국내 배터리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절대 내재화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스탠퍼드 적통’ CTO는 이 막중한 임무를 해낼 수 있을까요. 그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 3편에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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